-. 이번 여행에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일은 이르쿠츠크에서 다시 동쪽으로 향하는 열차를 타려고 했을 때 벌어졌다. 후지르 마을에 도착했던 날의 여정만큼 길고 복잡한 방법을 거쳐 올혼섬을 나와서 늦은 오후에 이르쿠츠크에 도착했고, 그날 저녁 기차를 탈 예정이었기 때문에 기차역에서 여유있게 기다리려고 했다. 근데 기차역에 도착하고 나서, 티켓을 뚫어져라 보고 나서야 내가 탑승 시간을 착각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타려고 했던 열차는 오전 시간 열차였고, 이미 한참 전에 떠났다. 여러 시간대를 통과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이용의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 모스크바 기준으로 시각이 표시된다는 점이고, 그 점을 계속 생각하면서 동선과 열차 타는 시간을 잘 지켜왔는데 마지막에 이르러서 단순한 계산의 실수인지, 여러 사항..
-. 북부섬 투어를 다녀온 이후로는 혼자 산책을 하며 후지르 마을 중심으로 여기 저기 다녔다. 숙소를 조금만 벗어나도 적막할 정도로 조용한 이 곳에서 가장 강력한 소리는 새가 내는 소리와 개가 짖는 소리다. 새소리에 이렇게 집중해본 적이 있나 싶다. 인간이 내는 소리는 자동차 소음과 집 짓는 공사 현장에서 나는 소리 정도. 혼자 여행을 다니면 개와 고양이가 친구가 되어주는 행복한 시간이 있는데, 올혼섬에서도 그랬다. 까만 개와 잠시 시간을 보내고 느릿느릿 움직이는 방목한 소들을 바라보는데 바닥에 흔한 깨진 유리병 때문에 걱정된다. 조금씩 걷다가 바위에 걸터앉아서 풍경을 바라보는 패턴을 반복한다. 아무래도 길고 추운 겨울이 있는 지역에서 맞는 봄의 햇빛은 애틋하다. -. 여행으로 시베리아 지역을 다닐수록..
러시아의 학교와 유치원은 이주배경의 아동을 어떻게 등록시키고 있으며, 전쟁 상황에서 이런 등록 절차는 어떻게 변했을까? 러시아 정권은 어떤 식으로 법에 제노포비아를 공고히하고 있을까? 사회언어학자인 블라다 바라노바가 이주배경 아동들이 학교에서 겪는 차별에 대해 설명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적인 침공이 시작된 이후에 러시아 내부의 반이민 정서가 강화되었다. 2023-2024년에 진행된 ‘레바다 센터’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민자들을 향한 불만은 부의 불평등, 교육 및 의료 접근성 등의 문제를 뛰어넘는 러시아 사람들의 중요한 사회적 관심사가 되었다. “러시아인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향한 외국인 혐오와 폭력의 가장 강력한 흐름은 2024년 봄 크로쿠스에서 발생한 테러 이후 일어났다. 그렇지..
Ermitage - Il potere dell'arte, 미켈레 말리 연출, 이탈리아, 2019 -. 2019년에 제작한 다큐멘터리이고 2021년에 개봉을 했었다는데 내 기억에는 없다. 어쨌든 재개봉이고 KU에서 상영하길래 보러갔다. 이탈리아에서 제작한 영화라 이탈리아 배우 토니 세르빌로가 나레이터로 출연한다. 왜 이탈리아에서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 에르미타시에 있는 이태리 작품들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에르미타시 본관 건물인 겨울궁전을 이태리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내용이 초반에 나온다. 그 설명을 보고 나서야, 뻬쩨르의 주요 건축물 중 많은 수가 이태리 건축가들 작품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 에르미타시 미술관의 탄생과 성장을 뻬쩨르부르그라는 도시의 역사와 병치시키면서 보여주고 그 비중이..
-. 보통 여행자들은 올혼섬에 들어오는 데 하루, 나가는 데 하루, 북부섬 투어 하루를 할애해서 2박 3일 일정으로 머무는데 나는 이곳에서의 시간을 여유롭게 보내기 위해 4박 5일을 배정했다. 둘째 날 숙소가 있는 단지 후문으로 나가 아침 산책을 기분 좋게 하고 와서 식사를 든든하게 했다. 북부섬 투어를 가는 승합차에서 핀란드 커플을 만나 이야기를 조금 나누었다. 출발 직전에 나에게 두 번째 차로 옮기라고 해서 다샤와 일본 남자 코헤이가 있는 차에 타게 되었다. 승합차 두 대는 같은 동선으로 움직이긴 했지만 그래도 다샤와 코헤이가 있는 차를 타고 함께 움직여서 의지가 되었다. -. 북부섬 투어는 멀미와 두통을 유발하는 오프로드 드라이브로 괴로워하다가, 정해진 지점에 내려서 자연의 경관에 경탄하고 다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