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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5 리뷰: <예르미타시: 예술의 힘>
    이달의 리뷰 2025. 6. 10. 10:48

     

     

     

    Ermitage - Il potere dell'arte, 미켈레 말리 연출, 이탈리아, 2019

     

     

    -. 2019년에 제작한 다큐멘터리이고 2021년에 개봉을 했었다는데 내 기억에는 없다. 어쨌든 재개봉이고 KU에서 상영하길래 보러갔다. 이탈리아에서 제작한 영화라 이탈리아 배우 토니 세르빌로가 나레이터로 출연한다. 왜 이탈리아에서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 에르미타시에 있는 이태리 작품들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에르미타시 본관 건물인 겨울궁전을 이태리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내용이 초반에 나온다. 그 설명을 보고 나서야, 뻬쩨르의 주요 건축물 중 많은 수가 이태리 건축가들 작품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 에르미타시 미술관의 탄생과 성장을 뻬쩨르부르그라는 도시의 역사와 병치시키면서 보여주고 그 비중이 크기 때문에 "러시아 예술과 사회" 혹은 "뻬쩨르부르그 역사와 에르미타시" 같은 제목의 수업에서 볼만한 교양 다큐로서의 기능을 한다. 당연히 뻬제르부르그라는 도시와 분리시킬 수 없는 19세기, 20세기 러시아 작가들도 소환이 된다. 인터뷰이들 중에는 에르미타시의 관장과 큐레이터, 직원들을 비롯해 러시아 근현대사 연구자로 유명한 올랜드 파이지스, 에르미타시와 관련된 영화를 만들 때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알렉산드르 소쿠로프도 등장한다. 일반적이고 무난한 내용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매력은 없는 영화가 되었다. 그래도 20세기 초반 혁명 이후 내전을 거치고 경제적으로 힘든 시절에 많은 그림과 황실의 고서를 비롯한 에르미타시의 소장품들이 미국 부호들에게 팔려간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이라 그래도 초반에는 호감을 가지고 보게 되지만, 보고 나서는 찜찜하다. 애초에 러시아 정부나 에르미타시 측의 전면적인 협조로 가능한 제작이었겠지만, 그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 미술관의 '순수성', 예술의 '절대성'이 강조되는 부분들에 못마땅해진다. (영화 제목도 마음에 안 든다 -_-) 아마도 루브르나 대영 박물관 같은 유럽의 대형 미술관들과 차이를 두고 싶은 것이겠지만, 에르미타시의 미술품들은 대부분 황실이 구입하고 귀족들이 기증한 작품들이라는 점이 특별하다고 흔히 이야기된다. 이런 식의 설명의 이 영화에서도 중요한 지점으로 부각되고, 전쟁 후 불공정한 거래에 의해 러시아에 미술품이 팔리기도 했다는 것이 언급되긴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잠깐 나오고 지나갈 뿐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소쿠로프가 하는 말로 정점을 찍는다. 에르미타시(겨울 궁전)을 배경으로 <러시아 방주>를 만든 감독인만큼 이 곳에 대한 애정과 의미가 각별하다는 것은 짐작이 되지만, "이 곳에는 훔치거나 빼앗은 물건이 없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공간 중 하나, 가장 순수한 미술관 중 하나다" 같은 이야기를 할지는 몰랐다. 그가 뻬쩨르나 에르미타시에 대해 이야기한 다른 부분들이 다 사라지고 결국 이 메세지만 남는 느낌이다. 애초에 로마노프 왕조의 제국주의 역사와 분리될 수 없는 에르미타시를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나?

     

     

     

    -. 나는 압도적인 규모의 미술관에 호감을 갖지 못하는 편이데, 뻬쩨르에서 지낼 때도, 나중에 여행으로 갔을 때도 에르미타시를 제대로 보지 못해서 이 미술관의 0.01% 정도를 살짝 구경해본 느낌이다. 그래도 깜깜한 겨울에 네바강 맞은 편에서 겨울궁전을 바라보는 것을 상당히 좋아했고, 영화를 보며 그때의 잔상을 떠올려봤다. 어쩌면 그게 이 영화가 남긴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찾아보니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자막은 없지만.

    https://www.youtube.com/watch?v=VIthokvCp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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