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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시베리아 여행 7: 바이칼 호수 가는 길
    지난해의 메모 2025. 4. 28. 12:11

     

    -. 이르쿠츠크를 떠나는 날 이른 아침 올혼섬 행 봉고차에 올랐다. 내가 제일 먼저 탔고, 시내를 계속 돌면서 여러 호스텔에 들려 사람들을 태운다. 러시아인으로 보이는 여자와 일본인으로 보이는 남자 일행이 타고, 북유럽 쪽 언어를 쓰는 건가 싶은 여자와 남자가 타고 (핀란드인이었다) 다음 호스텔에서는 영국 여자 1명과 다른 일행 5명이 탔는데 이들은 프랑스어를 쓴다. 처음에는 적당한 데시벨로 러시아어만 들리다가, 핀란드어가 추가되고, 불어가 너무 크게 들리더니, 그 영국 여자는 타자마자 뒷사람들과 계속 영어로 이야기한다.

     

     

    좁은 봉고차 안에 울려 퍼지는 언어들 속에 정신이 없기도 하고 시끌벅적한 사교적 대화에 주눅 들어서 나는 창밖 풍경만 조용히 보면서 갔다. 첫 휴게소에 들렸을 때 나도 용기를 내어 옆에 앉은 여자에게 where are you from? 하고 말을 건네본다. france and you? - I';m from korea. 그 순간, 일본인 남자와 함께 탔던 러시아 여자가 차에 들어오면서 이 대화를 들었다. 갑작스러운 한국어. “러시아 사람입니다. 한국어 배웁니다.” 내가 너무 놀라서 한국어를 엄청 잘 하신다고 러시아어로 말하니까 쑥스러워 하면서 아니에요, 아직 멀었습니다라고 한국어로 답한다. 그렇게 다샤와 말을 트게 되었고, 봉고차에서 느껴지던 공기도 조금 편해졌다.

     

     

    -. 운전기사를 제외하고 봉고차 탑승객 10명 중 유일한 러시아인이었던 다샤가 한국어를 배운다니. 두 번째 휴게소에 내렸을 때 한국어로 이야기해보니, 이르쿠츠크 출신이며 대학에서 한국어를 배웠고 공부한 지 3년쯤 되었는데 재작년에 대전에 4개월 동안 연수를 다녀왔다고 했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는데 한국어를 꽤 능숙하게 했다. 탑승객 팀에서 왠지 비호감 인상이었던 영국 여자는 일본어를 할 줄 알아서 이동 중에 일본 남자와도 한참 이야기하고, 다샤에게도 계속 영어로 말을 걸었고 난 그 대화를 듣고 있었다.

     

    다샤: 나는 지금 대학원 다니고 있고 브릿팝을 좋아하는데 공연을 볼 기회가 없어서 아쉬워

    영국 여자: 모스크바에도 그런 공연 많이 하지 않아?

    다샤: 음... 모스크바는 너무 멀어. 아직 가본 적도 없어. …… 기회가 되면 한국이나 일본, 다른 아시아 나라에서 러시아어를 가르치고 싶어.

    영국 여자: 그냥 가면 되잖아?

    다샤: 아니야, 어려워...

     

    다소 쓸쓸하게 이야기한 다샤의 말은 그 나라들에서 러시아어 교육에 대한 수요가 별로 없다는 의미였던 것 같다. 가끔 해맑음을 가장한 영어권 출신 사람들의 왜 안돼? 뭐가 문제야?” 하는 태도에 어이없을 때가 있는데, 그 영국 여자도 다샤의 대답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그 대화를 듣다가, 나의 러시아어 선생님이 되어주면 좋을텐데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 요란하게 오가던 대화들도 조금 잦아들 때쯤 바이칼 호수에 근접했고, 배를 타고 이동해 다시 후지르 마을까지 봉고차로 한참을 가야 했다. 섬에 들어선 이후 운전기사 분이 해주는 이야기를 통해 현지의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본인은 이 지역 사람인데도 뭐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모든 것들이 너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1990년대부터 여행/관광업이 시작되었고 그전까지는 대부분 어업에 종사했다, 예전에는 독일 사람이 많이 왔는데 최근에는 프랑스 사람들이 많이 오고, 아시아 쪽은 일본 사람들이 많이 오다가 한국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바이칼호의 북쪽과 남쪽은 아무래도 위험하고 그래서 가운데 쪽인 올혼섬에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을 도로 포장이 되어 있지 않아서 반쯤 기울어진 차를 타고 가며 들었다. 격렬한 진동이 계속되는데, 프랑스 일행 중 한 명이 그럴 때 마다 울랄라~하고 선창하듯 놀라면 다른 사람들도 와우~ 하면서 리액션을 보여줬다.

     

     

    -. 오후 3시쯤 되어서야 후지르 마을 숙소에 도착했다. 21실인데 오늘은 혼자 사용하는 듯 하다. 주변 산책을 잠깐 하며 마을의 사원까지 다녀온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장거리 이동의 여파인지 숙소에서 실신하듯 잠에 빠져들었다. 꿈에서 헤매다 갑자기 일어났더니 이미 8. 카페테리아에 가보니 식사 시간은 끝났다. 어제부터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해서 저녁을 기다리고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다샤와 그 일본 남자를 식사 시간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기 때문에 허탈했다. 이르쿠츠크에서도 지친 상태로 깊은 잠에 빠져서 연극을 놓쳤는데, 올혼섬 도착하자마자 그러니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렇다고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 곳에서 한국에 있는 B나 누군가에게 연락하며 기분 전환을 하기도 어렵다.

     

    결국 하나 남은 짜장범벅, 홍차, 초코파이로 식사를 대신했다. 상점을 다녀오고 바냐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그래도 피곤함이 좀 풀리면서 기분도 나아졌다. 이르쿠츠크는 낮에 다닐 때 더워서 힘들더니 바이칼 호수 쪽은 기온이 확실히 낮아서 바냐 앞에 줄을 서 대기하는데 입김이 나왔다. 샤워를 하고 방에서 미지근한 발찌까 맥주와 Lays 감자칩을 먹으며 편한 시간을 보낸 것이 그날 저녁에 찾은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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