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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시베리아 여행 8: 올혼섬 북부 투어
    지난해의 메모 2025. 5. 12. 10:24

     

    -. 보통 여행자들은 올혼섬에 들어오는 데 하루, 나가는 데 하루, 북부섬 투어 하루를 할애해서 23일 일정으로 머무는데 나는 이곳에서의 시간을 여유롭게 보내기 위해 45일을 배정했다. 둘째 날 숙소가 있는 단지 후문으로 나가 아침 산책을 기분 좋게 하고 와서 식사를 든든하게 했다. 북부섬 투어를 가는 승합차에서 핀란드 커플을 만나 이야기를 조금 나누었다. 출발 직전에 나에게 두 번째 차로 옮기라고 해서 다샤와 일본 남자 코헤이가 있는 차에 타게 되었다. 승합차 두 대는 같은 동선으로 움직이긴 했지만 그래도 다샤와 코헤이가 있는 차를 타고 함께 움직여서 의지가 되었다.

     

     

    -. 북부섬 투어는 멀미와 두통을 유발하는 오프로드 드라이브로 괴로워하다가, 정해진 지점에 내려서 자연의 경관에 경탄하고 다시 고통받는 이동의 과정을 반복한다. 이러다가 차 밖으로 튀어 나가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의 흔들림 속에서 조금 전에 본 고요한 자연의 풍경은 마음 에 자리 잡지 못하고,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긴다고 생각하자같은 자기 암시를 되풀이한다. 속이 안 좋거나 컨디션이 힘든 사람에게는 이런 이동 자체가 너무나 고난일 수밖에 없는데, 섬을 관광의 루트에 맞춰 개발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과 자연을 가까이하는 여행은 역시나 체력이 좋고 장애가 없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공존한다.

     

     

    -. 예상대로 코헤이는 다샤와 연인 사이였는데, 후쿠오카 출신이고 도쿄에서 일한 지 4년쯤 되었는데 1년 전에 이르쿠츠크로 연수를 왔고 곧 우크라이나에 있는 일본 회사에서 일할 예정이라고 했다. 코헤이는 전형적인 일본인 억양으로 러시아어를 해서, 어학연수 시절에 만났던 일본인 친구들을 떠올리게 했다. 다샤와도 투어를 하며 한국어와 러시아어를 섞어서 이야기했다. 한국 영화도 많이 보고, 언니네이발관이나 넬 같은 한국 밴드들의 음악도 즐겨 듣는다고 했는데, 충청 지역에서 연수를 했기 때문에 충청도 사투리가 익숙하다면서 말을 하고 끝에 “~를 덧붙여서 나를 웃겼다.

     

     

    -. 두 대의 투어 차량에 있는 사람들 중 일행 없이 혼자 온 사람은 나 외에 올혼섬 행 승합차를 함께 탄 영국 여자뿐이었다. 저널리즘에 종사하고 일본어에 이어 현재 중국어를 공부 중이라는 이 사람과 중간에 내렸을 때 잠시 이야기를 했는데, 한국에서 무슨 일 하냐고 하길래 액티비스트라고 답하니까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데모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액티비스트?” 하고 되묻는다. 마치 내가 액티비스트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고 쓴다는 듯. 기분이 상했지만 그렇다고 그냥 고개를 끄덕이면서, “왜요? 그렇게 안 보이나요?”라는 말은 속으로만 한다.

     

     

    -. 차를 운전하는 기사가 운전 외에 맡은 주된 역할은 중간에 간단한 점심을 세팅하고 요리하는 것이며, “이곳이 예전에 생선 만드는 공장이었다정도의 멘트 외에 특별한 가이드를 하지는 않는데, 러시아식이라고 느꼈지만 그런 점이 편하기도 했다. 투어를 하면서 본 풍경은 전반적으로, 뭔가 표현하거나 설명하기 힘들었다. 당연히 사진으로도 담기지 않았고. 그냥 한 조각을 간직하기 위해 작은 디지털 카메라를 누를 뿐이었다.

     

     

    -. 북부섬 투어는 당연히 인상적이었지만, 이곳에 머무는 동안 숙소 뒷문으로 나가서 바이칼의 풍경을 바라보며 한참 앉아있던 시간이 더 오래도록 남았다. 바이칼 호수를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대학을 졸업할 때쯤이었나? 시베리아 지역에 대한 관심이 있었는데, 전공 수업 때는 거의 다루지 않아서 그나마 있던 관련 교양 수업을 찾아 듣고, 졸업 후에 이 지역에 대한 여행기, 에세이 등을 읽으면서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떠나기 직전에 힘든 소식이 나를, 가족을 무너뜨렸고 이 여행을 아예 취소해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돌아가면 어떤 상황을 마주해야 할지 불안과 걱정이 여행 내내 나를 휘감았지만, 그래도 바이칼을 보고 있는 그 시간에 여행을 취소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여기 올 수 있어서 기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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