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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4 리뷰 : <야수를 믿다>이달의 리뷰 2026. 5. 5. 10:10
나스타샤 마르탱, 한국화 옮김, 2025, 비채
저자 나스타샤 마르탱은 시베리아에 거주하는 유목 민족 에벤인을 연구하는 프랑스 인류학자다. 연구를 위해 머물던 캄차카 반도에서 곰을 대면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크게 다쳤다. <야수를 믿다>는 그 사건, 그리고 여러번의 수술을 해야 했던 치료 과정과 결국에는 시베리아로 돌아가기 까지의 시간을 회고한 책이다.
나스타샤는 곰의 공격에 간신히 저항하면서 살아남았고 이 침투가 자신에게 남긴 흔적을 돌아본다. 오랜 시간 알아온 선주민 친구 안드레이가 치료 중인 그에게 곰을 용서했냐고 묻는다. “곰은 너를 죽이고 싶어 하지 않았어. 곰은 너에게 표식을 남기고 싶어했어. 너는 이제 미에드카야. 서로 다른 세상의 경계에서 사는 자” 역자주에 의하면 에벤어에서 ‘미에드카’는 곰과 조우하고 살아남은, 곰의 표식을 받은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안드레이의 이 말이, 감당하기 어려운 경험을 돌아보는 나스타샤의 이야기를 관통한다.
“그날 밤, 나는 야수를 믿어야 한다고, 그들의 침묵과 그들의 신중함을 믿어야 한다고 쓴다. ···중립성과 무관심, 횡단성이 존재하는 비공간 안에서 몸과 영혼에 작용하는 후퇴를 믿어야 한다고, 형태가 없는 것이 조용히 급작스럽게 구체화되고, 그려지고, 재정의된다. 신경분포를 막고, 다시 신경을 분포시키고, 섞고, 병합하고, 이식하고, 곰과 그의 발톱이 지나간 내 몸, 피가 흐르지만 죽음이 없는 내 몸, 삶으로, 실밥과 손길로 충만한 내 몸, 여러 존재가 만나는 열린 세계의 모습을 한 내 몸, 그들과 함께, 그리고 그들 없이 회복하는 내 몸, 내 몸은 혁명이다.”
“2015년 8월 25일, 그날의 사건은 캄차카 반도의 산 어딘가에서 곰 한마리가 프랑스 인류학자를 공격한 것이 아니다. 사건은 곰 한 마리와 한 여자가 만나고 세상의 경계가 파열한 것이다.···이것은 현실과 신화의 만남이고, 과거와 현재의 만남이고, 꿈과 실재의 만남이다.”
어떻게든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고 기록해야 이 시간을 통과할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지만, 이런 언어들이 나에겐 너무 과잉이라고 느껴졌다. 멜랑꼴리하다고 해야할지 저자의 문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더 그렇게 느껴진 면도 있다. 책 후반부, 시베리아 가족이자 친구인 다리아에게 어쩔 수 없이 자신이 할 줄 아는 ‘인류학’을 할 거라고, ‘다른 자들에게서 온 것을, 내 몸을 통과해서 내가 모르는 곳으로 가는 것을 돌아와서 붙잡고 번역하는’ 작업을 할 거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을 보면서 인류학자라는 정체성이 이 사람에겐 결정적인가 싶어서 과하게 느껴진 저자의 언어도 좀 더 이해가 되었다. (인류학자에 대한 편견은 미안하지만,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그렇게 해석하긴 했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결정적 사건’ 이후에 “꿰매고, 씻기고, 자르고, 다시 꿰매야” 했던 시베리아 병원에서의 첫번째 치료를 비롯한 지난하고 복잡한 치료 과정이다. 어떤 병원에서 치료 받을지 한참 고민하고 가족들과 오랜 상의 끝에 결정해서 파리 살페트리에르 병원에 갔으나 그곳에 이송되자 의료진이 자신을 ‘러시아 곰’이 들이닥친 것처럼 대하는 광경을 마주한다. 그리고 턱 뼈가 부러지고 얼굴이 크게 다쳐 치료 자체가 쉽지 않았던 것과 별개로 “곰에게 잡아 먹힐 뻔 했던 젊은 여자’ 는 병원에서 화제에 오르기 쉽상이고 ‘희귀 케이스’로 의대생들에게 전시되어야 했던 일은 병원에서의 ‘치료’라는 것이 의료적 처치와 극심한 통증 이상으로 여러 층위를 감당해야 하는 경험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이런 면에서 다른 에세이들의 ‘환자 기록’과 연결되기도 한다. 게다가 파리 병원의 의료진들은 러시아에서 받은 치료를 상당히 미심쩍어 하고 나스타샤의 몸은 ‘프랑스와 러시아의 의료 냉전 현장’이 된다. 이런 상황에 익숙해질만하니, 고향 그르노블의 병원에서도 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공장 같이 운영되는 파리의 병원과 환자를 인간적으로 대한다고 생각하는 지방 병원 사이의 경쟁 내지 적대 관계도 저자를 더 힘들게 만든다.
한편, 캄차카 반도에 위치한 러시아 군의 비밀기지가 선주민의 삶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에벤인 내부에서 정부에 친화적인 그룹과 아닌 사람들이 갈리는 지점에 대해서는 어떤 힌트처럼 흐릿하게만 언급되었는데 내가 궁금해하고 더 알고 싶어하는 내용들이라 아쉬웠다.
+찾아보니 목판화 같은 느낌의 원서 표지도 괜찮았는데, 한국어본은 곰의 털을 시각적으로 더 강조한 이미지다. 근데 앞날개의 저자 사진은 원서에도 있는 것인지 궁금. 현대 작가 책에서 저자 사진을 본 게 오랜만이라 일부러 넣은 것인지 의아했다.'이달의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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